최근 여성 징병 청원이 굉장히 큰 이슈다. 찬성하는 측과 반대하는 측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누가 옳은가. 그건 중요하지 않다. 찬성하는 근거도 타당하고, 반대하는 근거도 합당하다. 둘 다 그럴싸한데 이 이슈에 참여하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중립?
그건 결정을 내릴 용기가 없는 겁보들이나 하는 짓이다. 이슈에 뛰어든다는 건 절대 중립이 있을 수 없다. 중립은 나중에 역사적 판단을 내릴 방관자, 대다수의 시민들의 역할이다. 설 곳을 고르지 못하겠다면 그냥 지켜보시라. 여기 저기 간보다간 잘 돼봐야 다른 사람의 아바타가 한계다.
[청와대 홈페이지 청원글]
자, 이제 상대방과 대화를 해볼까? 이슈에 참여하는 순간 깨닫는다. 아, 여긴 투기장이구나. 상대방은 내 이야기를 들으려하지 않는다. 나 역시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다. 서로가 상대방의 말꼬리를 잡고, 이해하지 못하고,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고, 격해지면 인신공격까지 서슴지 않는다. 잠시 멈추고 입장을 확실히 하자. 나는 싸우고 싶은 것인가 아니면 대화가 하고 싶은 것인가?
[싸움을 멈춰주세요!]
여기 대화의 방법을 잘 보여주는 웹툰이 있다. 네이버에서 연재중인 <뷰티풀 군바리>이다. 지금까지 군대를 소재로 한 웹툰은 많이 있었다. 기안84의 <노병가>, 김보통의 <D.P 개의 날> 처럼 군대의 부조리에 대한 웹툰도 있고, 주호민의 <짬>처럼 군 생활을 다룬 웹툰도 있다. 그 외에도 연인들의 이야기나 홍보 웹툰까지 다양하다. 수많은 군대 웹툰들 사이에서 <뷰티풀 군바리>의 위치는 굉장히 독특하다.
[뷰티풀 군바리 37화 표지]
<뷰티풀 군바리>는 확실한 전략으로 남성들의 전유물인 군대이야기를 여성에게도 나누어 주었다. <뷰티풀 군바리>의 배경은 남녀 모두 징병대상이다. 여성 징병에 대한 개연성이 부족하지만 상관없다. 이야기를 시작하기 위한 최소한의 설득력만 있으면 된다.
여성 징병의 이유야 간단하다. 남녀 모두에게 어필하고 싶으니까. 실제로 남자들에게는 귀여운 주인공으로 어필하고, 여성들에게는 진입 장벽을 낮추고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이게 바로 <뷰티풀 군바리>가 독자들에게 공감으로 다가간 첫 걸음이다.
[다른 말은 필요없다]
성별 반전의 전략이 성공한 데에는 윤성원의 작화가 한몫 한다. <노병가>나 <D.P 개의 날>같은 그림체였다면 독자들이 느끼기에 그냥 여자로 그려놨을 뿐인 칙칙한 남자들의 군대 이야기였을 것이다. 반대로 마냥 귀엽게만 그렸다면 군대를 소재로 한 일상툰 혹은 홍보 웹툰처럼 보였을 것이다.
윤성원의 그림은 그런 점에서 적절한 밸런스를 보여준다. 기분 나쁜 리얼리티를 강조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어설픈 데포르메로 포장하지 않는다. 전체적으로 밝고 귀여운 그림체를 유지하기 때문에 독자들은 알맞은 거리감을 두고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다. 만약 거리를 두지 않고 실감나게 묘사했다고 생각해보자. 구타와 부조리가 오고 가는 장면들이 눈에 걸렸을 것이고, 필자는 이 작품을 굉장히 야만적인 묘사로 자극을 주는 B급 웹툰이라고 말했을 것이다.
[뷰티풀 군바리 69화]
단순히 그림만으로 <뷰티풀 군바리>가 지금의 위치에 오른 것이 아니다. 스토리 작가 설이의 스토리텔링 역시 인기의 한 부분이다. <뷰티풀 군바리>의 스토리는 딱 두 마디로 정리할 수 있다. “현실적인 이야기, 그 모음집” 등장인물은 여성이지만 철저하게 남자들이 겪은 진짜 군대 이야기이다. 게다가 군 생활 2년에서 가장 크거나 다이내믹한 에피소드를 모아놓았다. 그래서 군 생활을 아는 사람은 공감하고, 모르는 사람은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정수아의 성장과 변화를 지켜보는 재미도 있다(65화 편집)]
물론 약간 과장한 것 아닌가 싶은 에피소드도 있다. 예를 들면 기수열외 당한 ‘오정화’, 하는 일마다 핵폭탄인 ‘주희린’, 타부대와 패싸움을 한 ‘민지선’ 등의 이야기가 그렇다. 그러나 그동안 <뷰티풀 군바리>가 만들어낸 ‘중기 방순대’라는 현실적인 공간이 이런 에피소드에도 현실감을 불어넣고 있다. 그래서 ‘에이 말도 안 돼’라고 말하게 되는 허황된 무용담이 아닌 ‘그래 그럴 수도 있지’라는 말이 나오는 진짜 군대 이야기가 완성되었다.
사람들은 쉽게 착각한다. 자신의 판단이 최선이라고 믿는다. 내 반대편을 잘못된 것으로 생각한다. 심한 경우 내편은 절대 선, 상대편은 절대 악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뷰티풀 군바리>에 나오는 다양한 인물들도 대부분 이 기준으로 선인과 악인이 나뉜다. 하지만 그건 굉장히 큰 착각이다. 군대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각자 자신의 환경과 사정에 맞추어 적응하고, 역할을 정립해가는 것이다.
모두에겐 내가 가진 만큼의 사정이 있다. 내게 적용되는 기준이 있다면 그건 똑같이 남에게도 적용되어야 한다.
[누구에게나 내가 모르는 사정이 있다. 나처럼.]
“군대 가야 정신 차리지”, “군대 별거 아니야”라고 말하는 사람이 주위에 있다면 그 사람을 떠올리며 <뷰티풀 군바리>를 읽어보자. 어떤 인물과 닮았다고 생각하는가? 군대는 쉽게 미화할 것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쉽게 비하할 필요도 없다. 군대는 굉장히 현실적인 문제이고, 많은 것이 얽혀있는 문제이다.
[군대? 좋아져도 군대다. (127화)]
여성도 군대에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남성들만 군대에 가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가? 군 생활 2년에 대한 보상을 바라는 게 당연한가 아니면 지나치다고 생각하는가? 이 복잡한 질문에 도덕적으로 우월한 답은 없다. 그렇다고 아무 주장이나 다 옳다는 의미가 아니다. 순간의 생각으로 책임지지 못할 말을 하기 전에 한 번만 생각하자.
지금 하려는 내 말이 정말 나를 설득하고 있는지, 대화를 위한 것인지 말이다. 일방적인 주장은 나에게도, 상대방에게도 의미없는 외침일뿐이다. 정말 이야기를 하고 싶다면 폭력이 아닌 공감으로 먼저 다가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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